[이글루스 피플] "흙"을 연구하는 아름다운 과학자 카본님

♥Tomato : 어떻게 지내세요? 하시고 계신 일, 관심 있게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카본 : 다녀 올께요! 하고 미국으로 유학 나온지가 벌써 7년이 됐어요. 작년 말에 학위를 마치고 같은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직 학생일 때와 차이를 못 느끼고 있어요. 필요하면 야외 조사 나가고, 도서관에 쳐박히거나, 학회지에 제출할 논문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실험실에 온종일 붙박혀 있기도 합니다. 가설을 가지고 모아야할 사실들을 찾아다닐 때, 작은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큰 줄거리가 드러날 때의 기쁨이 절 먹여살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행복합니다. 그래도, 늘 달리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B 형의 특징이라고 하더군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지만, 흙에 관한 교양서를 써보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구요, 틈틈히 찰스 다윈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연구도 해야하고, 네살박이 아이와 노는 재미가 또 만만치 않아서,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일들이지요.

♥Tomato : 카본님 이글루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카본 : 작년 학위 논문을 쓰면서 외롭고 답답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수도 없이 논쟁을 해야 했는데, 여기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겹치니까 괜시리 종종 외로와 지더군요. 한편 논문 쓰는 동안, 옆으로 자꾸 새버리는 제 눈을 단속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들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글로 적어보고 싶은 얘기들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왜 이제서야 머릿속을 맴도는지… 답답하더군요.

이런 외로움과 답답함의 출구가 제 블로그인 셈입니다. 전공은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배우는 것들, 더 깊이 발전시켜 책으로 모으고 싶은 메모들, 공부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 일상의 기록들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지구, 생태, 환경에 관한 과학의 최근 발견도 알기 쉽게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무리일 듯 싶어요.

♥Tomato : 하고 계시는 연구(공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카본 : 제 눈과 귀는 사람들의 발바닥 밑에 쏠려있습니다. 흙을 공부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흙이요?” 하고 되물어요. 그 되물음의 의미가 오히려 전 궁금하답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지만, 몸도 없이 살아있는 사람은 없쟎아요? 가령 제 69 킬로그램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에게 헤쳐모여!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들이 “나라고 정의된 1 세제곱 미터가 안되는 공간”으로 모여드는 여정을 다큐멘터리 필름에 기록하기 위해선, 60억 인구가 우주의 역사인 150억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온 하늘과 강과 바다와 흙, 생명체들을 헤맨다 해도 턱도 없을 겁니다.

전, 이 방대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서 흙을 전담하는 팀에 속해있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나 더 하자면, 장마에 부푼 강 치고 맑은 물이 없쟎아요? 저렇게 흙이 씻겨가면, 땅이 다 북한산 인왕봉처럼 암반이 드러나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죠. 덕분에 야생화도 신갈나무도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씻겨나가는 만큼 흙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제 공부의 또 한 축입니다.

♥Tomato :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있다면요?
★카본 : 다양성입니다. 따로따로 보자면, 살아 있는 것들이 나름대로 가진 특별성이니까 존재가치입니다. 여럿이 모였을 땐, 관계의 다양성이 드러나면서 생태계 또는 사회의 존재가치가 되죠. 눈 앞에 드러난 생물 종의 다양성은 45억년 지구 역사에 걸쳐 펼쳐지는 동적 드라마의 숏컷입니다. 인간의 다양성은 작은 일부고요. 또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그만큼의 역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시간은 못 산다고 하지만, 다양성은 시간 플러스 알파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이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선 위에서 가치판단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편, 다양성의 존중이 옳고 그름은 없다는 식으로 흘러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억압하는 것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 이성애자 대 동성애자의 차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무시, 사상의 자유에 대한 간섭, 차이를 권력으로 변질시키는 지연/학연, 생물 종 다양성과 자립적인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개발과 진보… 이런 것들이 넘어야 할 산이겠지요.

♥Tomato : 환경(또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요?
★카본 : 자연을 지킨다기 보다는, 지구와 그 품의 생명(인간을 포함한)들이 서로를 보살피는데 방해가 안되도록 스스로 삼가할 줄 알아야겠죠. 새만금도 마찬가지이구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이제 상식화 됬다고 봅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실천이 되는데는 엄청난 모티브가 필요하죠,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과학이 이 모티브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랍니다. 바람이 있다면, 새만금과 도룡뇽 소송으로 널리 알려진 천성산에 더 맣은 사람이 깊이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Tomato :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어느곳인가요?
★카본 : 4 년 전, 학교 수업 중에 한달에 걸쳐 캘리포니아를 갈짓자로 횡단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캘리포니아의 다양한 생태와 흙을 관찰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야영을 했는데, 모하비 사막에선 맨 땅 위에서 침낭을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별에 깔려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랬다면 복이겠죠? 그 때부터, 사막을 좋아했습니다. 미 서부의 여러 사막 지대를 가족과 돌아다녔는데, 사막은 역설적인 곳입니다. 물이 없어 사막이지만, 사막에서만큼 물의 흔적이 잘 드러난 곳은 없습니다. 살 수가 없어 사막이라지만, 자라는 식물과 동물을 보면, 삶이란 얼마나 못 말리는 것인지가 역으로 드러납니다. 바다와 가장 반대되는 것 같지만, 사막에서 물이 고이고 증발하는 곳은 온통 소금바닥입니다. 과잉된 상식들에 가려있던 상식의 핵심이 화끈하게 드러나는 곳, 그곳이 사막입니다.

♥Tomato : 결혼과 사랑에 대한 카본님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카본 : 내년이면 만난지 10년이 되는, 저의 처는 가장 좋은 말 상대입니다. 유학와서, 어려운 살림 중에도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짝짝꿍이 잘 맞아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만사에 다 동의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의견 차 때문에 서로를 설득하려 애도 쓰고 안 되면 삐지기도 하지만 (주로 제가 삐집니다), 싸우고 화해하기를 한두번 한 것도 아니고… 아, 그건 중요하겠네요. 이 사람이라면, 다투고도 이뻐보이겠다…^^

결혼 생활은 연애 때와 다른 면이 있어요. 연애 때는, 서로에 대해 다 알고 싶어하죠. 그래서 오버하다 보면 속박하고 결국은 차이기도 하고…. 특히 남자들이 많이 그런 거 같아요. 같이 살다보면, 여기까지만…그런 게 자연스레 느껴져요.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구나… 하는 게 전해지니까. 내가 알고 싶은 욕구와 상대의 기분과의 균형을 맞추는데 조금 노련해진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음, 얘기가 좀 샛군요. 사랑이란, 그래서 시작하기보다는 조화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듯해요.

♥Tomato : 앞으로의 생활에 관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카본 : 7월에 둘째 출산이 있어요. 산모와 아기가 건강히 잘 지내도록 하는 게 첫번째구요. 두번째는, 둘째 때문에 서러울 첫째랑 많이 놀아줘야겠죠. 앞으로 몇 년 안에 한국으로 다시 들어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을 나누고, 과학과 사회에 징검다리를 놓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공부를 지구과학 생태과학 전반으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지혜까지 가면 좋겠죠..)을 눈으로 삼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록하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한 꿈입니다. 특히 실크로드를 아주 느릿느릿 따라 가 보고싶습니다.

♥Tomato : 카본님이 추천하는 블로거 5분과 추천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카본 : 들르다 보면 어떤 분일까 궁금해지는 블로그입니다… 소갯글은 쓰기가 두려워지는군요. 저의 짤막한 말이 그분들의 사연들을 왜소하게 만들까봐서요… 용서해주시길.

삼화빌라 401호 행복공작소
mino 님, 글의 행간에서 약간의 냉소와 커다란 애정의 교차를 늘 느낍니다.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
김정수님의 엄청난 독서와 삶의 기록에 대한 열정은 저를 전염시키고도 남습니다.
Street-Soul
naki 님께서 덧글 많이다는 분 선물 주는 이벤트를 여셨는데 크게 재미를 못보셨나봐요…좋은 내용이 많은데...
Janghyun’s weBlog
오장현님 이렇게 말하면 화내실까 걱정이 되지만... 왠지 저의 20대를 상기시키시는...^^
걸어다니는 세상
wintry님의 짤막짤막한 일상의 기록들이, 한국에 대한 저의 향수를 부채질한답니다.

♥Tomato :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글루를 방문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요?
★카본 : 얘기를 공감대를 넓히지 못하는 게 저의 한계인 듯해요. 과학 얘기는 지루하기 십상이거든요. 그런데도 덧글 남겨주시고 그러면 정말 반갑더군요. 모니터가 사람으로 보여요. 제 블로그의 썰렁함을 무릅쓰고, 들어와 주시고, 글 남겨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카본님은 [흙 장난, 물(불?) 장난: 지구와 생태를 궁리하다] 이글루에서 지구, 생태, 환경에 관한 과학 이야기와 일상의 단상을 기록하고 있는 유경수님 이십니다. 유경수님은 박사후연구원으로 "흙"이 생태계에서 펼치는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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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ato | 2004/05/21 10:35 | 이글루스 피플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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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팟찌 at 2004/05/21 15:22
축하드려용..*^^*
저도 B형인데..늘 달리 하고 싶은일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Commented by erehwon at 2004/05/21 16:01
포닥이시라, 힘드시겠지만 다소 부럽기도 하네요. :-) 앞으로도 좋은 연구성과 거두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1 16:35
팟찌님, erehwon님, 축하와 격려 고맙습니다.

팟찌님, 제자신이 그런 거 이젠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사는 걸로 때워볼려구요.

erehwon님, 네.. 뭐, 연구 많이 하는 척 하기가 힘들죠...^^
Commented by 오장현 at 2004/05/21 23:38
우왓~ 축하드려요~~~

카본님 이글루의 좋은 내용들을(21세기의 복음^^;;이라고 생각함)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을테니 더더욱 축하드립니다. ^^

(제가 30대에 카본님처럼 멋지게 될 수 있을까요? ㅜ.ㅡ)
Commented by wintry at 2004/05/22 00:19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카본님의 글들을 보면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많은 깨우침을(!!!) 주시길. ㅎㅎㅎ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2 03:29
오장현님, 과찬이세요...30대가 되면 많은 고민들이 수그러들 줄 알았는데, 새로운 것들이 또 나타나데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wintry님, 오히려 제가 깨우치는 걸요.. 무슨 책을 가지고 가기로하셨는지 궁금해요.
Commented by 이오 at 2004/05/22 08:43
우선 급하게 축하인사 남긴다!
여기 집이 아니라 원주거든. 무위당 장일순선생 10주기 모임에 어찌어찌하여 오게 되어서 아침먹고 컴퓨터가 눈에 띄어 남긴다.
내 홈피에 올라온 것엔 답글도 못달고 하하.
어제 와서 1박하고, 오늘 서울갈 거 같다.
왕왕 축하~ 근데 사진이 실제 얼굴보다 못해!
더 잘나온 거 없나? 미남의 분위기를 못살려서 안타깝당.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4/05/22 13:24
축하드립니다!! 충분히 추천받아 마땅할 블러그더군요..
링크된 분의 블러그가 추천되서 제일처럼 기쁨니다.
배울점이 있는 삶은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짝짝짝짝!! 연구 열심히 하시길..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2 14:48
이오 누나, 제 얼굴에 저 정도 나왔으면 참 잘나온거에요.. ㅎㅎ
그나저나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고맙습니다. 김정수님이 먼저 이글루스 피플에 오셔야 하는데..
Commented by airen at 2004/05/22 15:25
카본님, 이글루를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과학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이시네요.
연구 열심히 하셔서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시는 분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글루스 피플 되신 것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블루 at 2004/05/23 00:26
추카드려요~~
흙에 대한 연구 많이 하셔서 사람들에게 흙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널리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3 12:42
airen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께요. airen 님도 학교에서 사회로 넘어가는 힘든 관문을 멋지게 통과하세요!

블루님, 네 사람들이 발바닥 아래를 좀더 경이의 시선을 갖고 보도록... 화이팅 합니다!
Commented by 이민우 at 2004/05/23 17:32
옷... 형 여기까지~~~ 우왕....
Commented by 이형구 at 2004/05/24 23:18
인화누나 홈피에 남긴 글보고 접속한다. 잘 읽었당..건강하게 잘 지내고 한국에서 다시 보기를...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5 01:32
민우야 형구야... 나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새로운 분들을 만나는 경험들이 참 좋다. 민우, 형구 모두 가까운 날에 다시 만나자.
Commented by JongWon at 2004/05/25 11:27
축하드립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6 02:59
Jongwon님, 좋은 일이라고 까지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sampler at 2004/05/26 09:35
감사합니다.. 자주 가게될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카본 at 2004/05/26 12:36
sampler님, 반갑습니다. 자주 뵐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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