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피플] 여유와 낭만, 역사가 숨쉬는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yiaong님.


Q. yiaong 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음, 딱히 소개할 말을 찾기가 어렵네요. '꼭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블로깅이 생활의 큰 부분이 된 가엾은 친구' 라고 한번 해볼까요.

Q. 스페인이란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끼셨던 첫인상은 어땠나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느낌이신가요?
차창 밖 풍경은 좀 황량하고 건조해보였어요. 실제로 마드릿(Madrid) 부근의 중부지방 기후가 그렇기도 하고, 또 그 때가 마침 초여름 무렵이었는데 여긴 여름이 오히려 더 건조하거든요. 쨍쨍한 맑은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데다가 저녁 열 시나 되어야 해가 지더군요. 그런 날씨에서 살아서 그런지 사람들도 무척 밝고 유쾌하고 또 친절하게 느껴졌어요. 수다떨고 먹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 참 좋아하고요.
이전까지는 영어가 필수 외국어이고 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여기 사람들은 영어 따위 잘 모르고도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우리에겐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데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구나 하는 것, 당연한 건데 새삼 신기했죠.
얼마 전 주말에는 친구 결혼식이 있었어요. 정말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놀더군요. 저녁에 클럽 비슷한 곳에 신랑신부, 가족, 하객 전부 모여서 춤추고 노는데, 어린 꼬마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며느리 시아버지 사돈지간 가릴 것 없이 다들 어울려서 흥겹게 노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어요.

이 사람들이 누리는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궁금함이 있어요. 농업도 많이 발달하고, 여러 문화가 충돌하고 뒤섞였던 역사를 가진 덕에 만들어진 독특한 유적들을 자원 삼아 관광으로 먹고사는 것도 같은데, 아직 잘은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런 역사를 거치면서 타문화(예를 들어 이슬람)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않은 듯해요.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좀 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도 쉽게 눈에 띄고요. 그런 주제들을 비롯해서, '예전에 너희가 세계를 휩쓸고 다니면서 주먹자랑하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니?' 등도 꼭 한 번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심각한 주제이기도 하고 말도 잘 안 통해서 좀 기다리고 있는 참입니다.

Q. 책을 읽고 쓰신 글들이 많은데 좋은 책을 고르는 yiaong 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네, 있죠. 좋은 선생님을 붙잡아야 해요.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에 대한 물음이 늘 있어서 사회나 종교 쪽 이야기에 귀가 좀 솔깃한데요. 다행스럽게도 책 많이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좋은 선생님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분들께 종종 추천을 받곤 해요.
다만 눈 반짝이며 부지런히 따라가는 의욕적인 학생이면 좋으련만, 게으르고 둔한 까닭에 그러지를 못해서 사실 많이 부끄러워요. 섭취 속도도 늦고 소화력도 안 좋고. 스스로 좋은 것들을 발견해낼 줄 아는 안목이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일단 열심히 주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좋은 책을 하나 만나면 그 지은이에 대해서 좀 친숙해지게 되니까 다른 작품도 읽게 될 수도 있고, 또 그 지은이가 인용/추천하는 다른 작가나 책에 손을 뻗어볼 수도 있겠죠. 그러다보면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네트는 광대하니까요.

그렇담 애초에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은?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인덕(人德)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

Q. 여행기를 보면 주로 미술 작품이나 건축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yiaong 님께서 가장 감동했던 작품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말로만 듣던 그것, 진짜로 봤어!' 하고 자랑 -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러고보니 생각나는데 마드릿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게르니카 진짜 있어. 내가 봤어!" 라고(만) 써있는 기념 엽서를 팔기도 하더군요.
그림이나 건축은 그 당시 문화의 가장 아름답고 특징적인 결과물이라고 일단 생각해줄 수 있으니, 그것들을 더듬으면서 나도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겠죠. 대체로 그 전에 뭘 좀 알아야 느낄 수 있으니 늘 한숨을 쉬기는 합니다만, 비록 겉핥기에 그칠지언정 침이라도 많이 발라서 핥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 원래 질문이 이게 아니었죠.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기억나요. 가우디가 건축한 필생의 역작인데 아직도 공사중이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듯 기괴한 느낌마저 드는데, 그게 또 어찌나 장엄하고 감동적이던지요. 한쪽 면은 생명의 불안한 꿈틀거림 속에서 기대와 희망이 싹트는 듯하고, 다른쪽 면은 예수의 수난 이야기가 굵직하고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죠. 이 앞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나요. 사실은 거기 있는 조각들에서 다른 이미지를 연상했기 때문이기는 한데, 세상을 향한 신의 안타까운 마음, 자기도 어찌할 줄 몰라 아파할 수밖에 없는 신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어요.

Q.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을 OS(운영체제)에 비유해서 말씀하기도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신가요?
내가 뭐라고 했더라. 잠시만요. (뒤적뒤적) 맞아요. 기본적인 일상생활(응용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밑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주어야 하는 하부구조, 혹은 배보다 더 큰 배꼽이라고 했었군요.
덧붙이자면, 이건 차이점이겠군요, 언어의 경우는 '번들로 따라온 OS'(모국어)를 갈아치울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ROM에 구워져 붙박이로 장착된 아주아주 기본적인 루틴이라고나 할까요. 외국어로 그걸 대체할 수는 없고 사이좋게 서로서로 잘 지내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숙제일 것 같아요.

지금 저의 상태를 생각해본다면, 이건 또 비슷한 점이군요, OS들은 대개 부팅디스크를 만들어놓을 수 있어서 긴급한 상황에서는 그걸로 컴퓨터를 시동할 수 있고 간단한 몇 가지 작업들을 할 수 있죠. 저는 지금 OS를 제대로 설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부팅디스크로 시동해서 꼭 필요한 몇 가지 일만 하면서 겨우겨우 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밥 사먹고, 물건 사고, 버스 타고. 외국에서 지낸다고해서 외국어가 자연스레 느는 건 아니고, '외국어 몰라도 그럭저럭 버티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 같아요. 이냥저냥 살게 마련인 거죠.

Q. yiaong 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앗, 이런 무지막지한 질문을... 혹시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애니?' 라는 질문이신 건가요?
흑흑, 맞아요. 저 사실 아무 생각 없어요.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스무 살 무렵이었던가 '나는 나중에 이런 자리에 올라가겠어' 라고 술자리에서 얘기하는 친구를 보며 좀 뜨악했던 기억이 있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목적 지향적인 삶,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경주하는 태도 안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숨어있지 않은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어요. 아, 꼭 어떤 '자리'라든지하는 세속적인 '목표'에 대한 질문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어쨌거나 미래의 한 가상의 고정점을 두고 그것을 늘 바라보는 건 제가 잘 못하는 일이에요. 사실은 이런 제 태도 때문에 사는 게 좀 밍숭맹숭하고 무기력한 면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서 옆에서 보면 좀 답답하지만, 어떤 게 더 나은 태도일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목표는 아니고 막연한 희망사항 같은 거라면 '삽질만 덜 해도 인생이 좀 편안할 텐데. 서로서로.' 뭐 이런 생각은 해요. 굳이 안 해도 될 일들 하느라고 힘들고 허탈하고 서로 상처주는 일이 많잖아요. 거기에 낭비되는 에너지도 많고. 그런데 삽질인 줄 모르고 하는 경우도 많고, 삽질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겠죠.
또하나, '최소한 내 앞에 있는 먹을거리는 남기지 말자, 함부로 버리지 말자' 하는 것은 기본적인 마음가짐으로 갖고 있어요. 너무 아깝잖아요. 밥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건데.

거봐요, 어려운 질문 하시니 엉뚱한 대답만 했잖아요.

Q. yiaong 님이 추천하는 블로거 다섯 분과 추천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1. Azafran 님의 En un lugar de la Mancha...
스페인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특히 산해진미가 넘쳐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방문하셔야 해요.

2. Elliott 님의 Dust's house
차분한 독서와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시는 분이시죠.

3. object 님의 art.oriented
프로그래밍에 대한 좋은 정보와 공부거리들을 제공해주시는 분입니다.

4. 다음엇지 님의 Kindred Spirits -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시나요?
앤 이야기와 함께, 좋은 음악을 많이 소개해주시는 분이지요.

5. 비나리 님의 낭만과 해학으로 함께 가는 길
한미FTA 책을 통해 알게 된 경제학자이신데요, 글의 초고나 생각들을 자주 메모하세요. 덜 다듬어진 글들을 보며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데, 시끌벅적한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까닭에 덧글은 안 남기시는 게 좋습니다. :)

Q. 마지막으로 yiaong 님의 이글루를 방문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그닥 실속이 없는 곳이라 누추하기만 합니다. 좋은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프라인에서 충실히 생활할 필요가 있다고 요즘 느끼는 참인데요. 잠시 컴퓨터를 끄고 산책이라도 하고 오시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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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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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aong 님은 [어딘가 닿겠지] 이글루에서 여행과 일상에 대해 블로깅 하시는 이지훈 님이십니다. 이지훈 님은 영상보안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계십니다.

yiaong 님의 이글루(yiaong.egloos.com) 바로가기    링크하기
by tomato | 2007/08/03 15:37 | 이글루스 피플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Linked at egloos PEOPLE : .. at 2010/08/31 10:58

... 위에 펼쳐지는 드라마. 네오사극 만화가 풍견風犬님! [2007-09-05]스타일이 있는 인형만들기, 인형 디자이너 memini님! [2007-08-20]여유와 낭만, 역사가 숨쉬는 땅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yiaong님. [2007-08-03]모두가 꿈꾸는 살기 좋은 세계를 향한 한 걸음. 기형z님! [2007-07-25]꽃과 사진을 사랑하는 상큼한 그녀 주연님! ... more

Commented by 후유소요 at 2007/08/03 18:25
축하합니다..^^ 사실은 옛 여행기에 남겨주신 덧글을 보고, 몰래 링크하고 읽어보기만 했었답니다 ^^;;;
Commented by yiaong at 2007/08/03 22:31
아 그러셨군요. 기억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wenzday at 2007/08/04 03:39
축하드립니다^^ 블로그 링크했어요, (미리) 잘 읽겠습니다 ^_^
Commented by 한때는 at 2007/08/04 07:39
안녕하십니까? 축하드립니다. ^^

링크하고 포스팅 잘 구독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Commented by yiaong at 2007/08/04 20:23
반갑고 고맙습니다. 정녕 링크당할 만한 곳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
Commented by Azafran at 2007/08/05 04:28
낯익은 사진이 대문에 걸려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축하드려요.
Commented by yiaong at 2007/08/05 07:45
아핫, 얼굴까지 기억하셨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요밍이 at 2007/08/13 19:14
허허 메인에 뜬 사진보고 깜작 놀랐네요.
Commented by yiaong at 2007/08/14 16:34
저를 아시는 분인가보군요. 어쨌든 반갑습니다.
Commented by 라미 at 2007/08/28 09:06
위의 저분은 저도 아는 사람인가 보네요 ^^
Commented by 풍뎅이 at 2008/07/02 14:10
냐옹군! 잘살고 있는고야??? 아직 스페인이더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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