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피플] 잔잔함과 넉넉함이 주는 마음의 여유. 허용님!


Q. 허용 님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고등학교 때까진 불량학생들과 친한 모범생으로 지내다가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모범생의 탈을 벗었습니다. 강의실보다는 거리와 술집과 돌벤치(풍물 연습을 하던 곳)에서 더 많은 걸 배웠습니다. 대학교와는 정반대의 위치-전투경찰-에서 군대생활을 마쳤고, 학부를 마칠 무렵 IMF를 핑계로 취업을 접고 전공을 바꿔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수료 후의 회사 생활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해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별명이 '둔보'였는데 여지껏 살아온 걸 보면 별명에 잘 어울리는 인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Q. 허용 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을 들려주세요.
'가장' 좋아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요즘에도 자주 떠올리는 구절 하나를 소개합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라고 시작하는 김수영의 '봄밤'이라는 시인데요, 저처럼 '아둔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위로와 영감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Q.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관용과 성찰. 언젠가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쓴 적이 있는데 관용이란 '그 누구의 노동도 다른 이의 노동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생각과 상통합니다. '노동'이라는 자리에 견해나 가치관, 이념이나 (사회적) 실천, 심지어 재화 등의 단어를 넣어도 무방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비유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용인이나 박애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노동이나 가치관이 타인의 그것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찰은 그런 관용의 전제를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선한 의지조차도 악행으로 귀결될 수 있으니까요.

Q. 휴일은 주로 어떻게 보내세요?
직장인처럼 일주일 단위로 짜여진 생활을 하지 않다보니 딱히 주말이나 휴일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주중에 공부외에 처리할 일이 생겨 도서관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면 내친 김에 쉽게 됩니다. 그럴 때는 청소하고 빨래하며 주변 정리를 합니다. 시간이 되면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북적한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죠. 하지만 가장 편안한 휴일 보내기는 아무래도 '방안에서 헤엄치기'입니다. 씻지 않고 뒹굴면서 DVD 보고, 배달시킨 음식 먹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이런저런 헛생각들을 하며 뒹굴거리는 거죠.

Q.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박물관에서 정말 괜찮은 전시를 한번 해보는 겁니다. 거창하고 우람한 전시가 아니라 작지만 알찬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대중적이면서도 학술적 깊이가 모자라지 않은 전시,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와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 나이 많은 어르신부터 꼬마 아이들까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전시.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소망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Q. 허용 님이 추천하는 블로거 5분과 추천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1. bloom님의 bloomusalem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시는 분의 블로그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할 성찰의 깊이와 넓이를 배웁니다.

2. urbino의 Be Thankful For What You've Got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계신 분의 블로그입니다. 전공이 비슷한 까닭에 보고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엄격함과 감성이 교차하는 '여성 연구자'로서의 향로가 기대되는 분이기도 합니다.

3. gyuhang 님의 김규항의 블로그
김규항님의 블로그입니다. 블로그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계실테니 굳이 설명은 필요없겠죠? 여전히 저에겐 '불편한 글'들이 많아 자주 들릅니다.

4. yaalll 님의 얄의 그림 글 사진
이글루스 피플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얄님의 블로그입니다. 시적인 성찰의 진수라고나 할까요?

5. 이화 님의 물새
제 어머님의 블로그입니다. 자식들에게 보내는 엽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요즘은 수신인이 많아졌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램입니다만 언젠가는 어머님의 글과 사진들을 모아 꼭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깊이와 주제를 다루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글루를 방문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요?
쓸모있는 정보나 진기한 볼거리와는 거리가 먼 저의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만 지루한 감상이나 넋두리로 흐르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니 앞으로도 종종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느끼시는 것보다 그리 딱딱하거나 엄숙한 인간은 아니니 말도 자주 걸어주시길.

Favorite Story

Book /고사 명언 명구 사전(1976년 평범사에서 발행한 정가 3500원짜리 책), 강의, 행복한 책읽기

Music /Images And Words, The Joshua Tree, 델리 스파이스 1집 - 델리 스파이스

Movie /파이란, 모노노케 히메, 매트릭스

Food /소주에 삽겹살/정종에 꼬치/맥주에 소시지

Wish List /파워북/Aprilia RS-50/중국서화도목 전질

Bookmark site /기획창작공간 산방, 진보넷, 학술 데이터베이스 검색사이트

허용 님은 [學習과 思索] 이글루에서 회화와 일상에 대해 블로깅 하시는 허 용 님이십니다. 허 용 님은 대학원에서 한국 회화사를 공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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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ato | 2005/11/15 11:49 | 이글루스 피플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팟찌 at 2005/11/15 14:10
어머님 블로그가 인상깊네요. 축하드려요~ ^^
Commented by urbino at 2005/11/15 14:48
멋지십니다. 오늘 올린 글의 오타를 수정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
Commented by Mushroomy at 2005/11/15 14:54
안녕하세요. 피플등극 축하드립니다. 처음 밸리에서 보았을 때 제 사촌동생과 이름이 같으셔서 깜짝 놀랬답니다^^;;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5/11/15 18:47
아... 이화님의 아드님이셨군요... 아마도 yaalll님네서 이름은 뵌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Commented by 사은 at 2005/11/16 04:39
허용님이 피플에! :D 한국 회화가 전공이셨군요. 한국 회화에 대해 참 해박하시다, 하고 부럽게 여기고만 있었는데, 몰랐습니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_<
Commented by 미르누리 at 2005/11/16 19:31
우와 어머님께서 블로그를.. 대단하시네요.
Commented by 허용 at 2005/11/18 11:17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이런 곳에 나오니 처음 뵙는 분에게도 축하를 받는군요. Mushroomy님도 그럼 성이 '허'이신가요? 그리 흔하지는 않은 성이니 머언 친척이라도 되겠는데요? 덧말제이님은 제 블로그에도 덧글을 몇번 남기셨는데, 기억하지는 못하시나 보군요... 사은님, 오랫만입니다. 간혹 들러 그림 잘 보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블로그도 '피플'에서 소개하려고 제안이 왔었는데 사양하셨더랬죠. 좋은 글과 편안한 풍경들이 많은 곳입니다. 미르누리님도 자주 들러보세요.
Commented by ed hardy p at 2010/07/06 14:45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cheap ghd at 2010/07/27 16:19
박물관에서 정말 괜찮은 전시를 한번 해보는 겁니다. 거창하고 우람한 전시가 아니라 작지만 알찬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습니다. 대중적이면서도 학술적 깊이가 모자라지 않은 전시,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와 관심사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 나이 많은 어르신부터 꼬마 아이들까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전시.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소망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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